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 사상 (문단 편집) ==== 모순론 ==== >모순이 없는 분야는 없으며 모순이 없는 세상은 없다. 모순은 단순한 기계론적 유물론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기계론을 넘어선 모든 형태의 운동의 기초이다. >---- >[[https://www.marxists.org/chinese/maozedong/marxist.org-chinese-mao-193708.htm|모순론]] 마오쩌둥 인식론의 주요 개념중 하나인 모순과 실천 중, 마오쩌둥은 모순에 대해 우선 데보린과 비슷하게 적대적 모순(敵對的矛盾)과 비적대적 모순(非敵對的矛盾)으로 나눈 다음, 전자의 모순은 처음부터 끝의 과정까지 모순의 과정을 관통하며,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본질적 모순에 해당하고, 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라고 정의한다. 마오쩌둥의 [[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C%88%9C%EB%A1%A0|모순론]]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계급 전쟁에서 최일선에 해당하는 모순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이므로, 서로의 계급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또한 갖가지 양태를 갖고 있는 모순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것은 백인과 유색인종, 제국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 남성 권위주의자들과 여성 사이의 투쟁, 심지어 노동자와 농민 및 빈곤노동자 사이의 투쟁으로도 양태화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이것들이 본질적인 모순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개 모순의 특수성, 즉, 모순의 진행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합(整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모순의 진행도가 제각각인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연변증법』(Dialektik der Natur)에서 논한 자연물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함하여 모든 본질적인 모순이 가진 보편적인 것(보편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그러한 모순의 정합을 따지는 것은 당과 인민이다. 그러하기에 자본주의 국가와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분리가 된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라는 대립 공간에 속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순은 갑자기 일거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인 정합, 과정을 거쳐서 감소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로써, 완숙한 공산주의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러한 나아감은 모순에 따른 투쟁의 원리에 기초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1 한 사회구성체에 적대적 모순으로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이 존재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가 최소의 수준에서라도 마련이 되어있는가? > * 아니오 → 1-1 적대적 모순으로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이 존재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로서의 계급투쟁은 불가능하다. > * 예 → 1-2 그렇다면, 그것이 직접적인 의미에서 충분히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대결로 표상될 수 있는가? > * 아니오 → 1-2-1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직접적인 대결이 표상되지 않다는 것은 해당 사회구성체의 모순은 다양한 의식성(意識性)의 중첩으로 인해 그 양태(様態)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계층 사이에서 매개 정합(整合)에 기초한 변증 투쟁을 이어나가야 한다. > * 예 → 1-2-2 이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직접적인 대결이 표상된 것이므로 전적으로 노동계급에 의거하여 변증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사상의 논리적 구조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중국의 상황이 1-2-1[* [[자본주의]]가 최후의 단계에서 [[제국주의]]로 나아가고, 제국주의 국가는 초과착취를 위해 세계 재분할을 감행함으로써 도래한 상황.]의 경로로 인해 조성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1-2-1에 따라 중국은 민족 해방 세력과 매판 지주 · 자본가 세력 사이의 대립이 진행되며, 주요 모순은 공산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상황이라고 규정한 상황 외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요소들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주요 모순은 모순성의 특수성을 정합성에 따라 인식한 후에 판단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시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데보린의 정식을 받아들인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양태를 갖고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를 단적인 경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투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들의 속성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단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많은 본질적 분쟁인 사건을 비본질적 분쟁으로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비판 대상인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은 소부르주아이기에 본질적인 혁명 동력이 없다고 봤으며,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분적 대립 등을 비본질적 모순으로 보아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마오쩌둥의 해법의 예로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혁명의 제2단계'(1917년 4월 ~ 1917년 11월) 시기에도 산업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닌, 영세농 및 소농, 그리고 소영업자들과의 동맹을 추구한 것으로도 들 수 있다. 레닌은 당시의 주요 모순이 단순히 프롤레타리아와 모든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전면적 대결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 제국주의의 세계 재분할 과정에서 드러나는 약한 고리에 강한 연관을 갖는 사건들에 있다고 봤다. 그리고 스탈린 집권 시기에는 사회주의 대건설이라는 것이 주요 모순으로 되었기에 모든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위한 농업집산화, 그리고 급진적인 국유화 단행이 진행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교조주의 기조가 본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취지에 어긋나며, 교조주의자들의 입장을 '혁명에서의 소극주의 경향'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투쟁 관계를 단순히 무산자-임금노동자와 유산자-사업가의 싸움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의 본질은 사실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라는 간극보다는 혁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력과, 반동으로 나가는 세력 사이의 간극이라고 본 것이다. 마오쩌둥이 혁명의 시기인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농촌에 기반한 농민운동에 중점을 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철학적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마오는 모순론에서 [[엥겔스]]가 말했던 '''혁명과 운동조차도 모순적이다.'''[*출처1 반듀링론]를 옹호하고 나아가서 대중과 [[공산당]] 간부에서의 모순조차도 있고 이를 '''대중의 직접적인 투쟁과 혁명으로의 관료를 무너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었다.[*출처2 [[https://www.marxists.org/chinese/maozedong/marxist.org-chinese-mao-193708.htm|모순론]]] [[스탈린주의]]와 시작부터 다른 마오주의는 이러한 사회 인식면에서도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마오쩌둥의 모순론의 정식대로라면 반봉건사회 또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격화된 양분의 대립은 계급 투쟁의 성격을 갖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립은 모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주의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사회주의국가 운영의 핵심은 이러한 모순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마오주의자들이 더더욱 현실 문제에 깊숙히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마오쩌둥 사상은 [[제3세계]] 운동, [[여성주의]]와 흑인 해방 운동을 포함하여 갖가지 해방운동에 기반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